갈등 탐구

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: 패자에게 굴욕까지 주어야 했을까?

쪽파 [Chives] 2024. 10. 27. 12:27

어제 1차와 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의 독립 어쩌면 건국이라고  표현할 수 있는 어마 어마한 사건을 다루었는데요.

그 2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되었던 1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연합국의 종전 협정이었던 베류사유 조약을 오늘은 들여다 봅니다. 
단지 원인과 결과외에도, 그 중간과정에서의 심리적 갈등이 느껴지고요.
다수의 국민을 고려해야 하는 리더들의 의사결정에서 조건없는 자비라는게 있을 수 있을까? 라는 생각도 드네요.

정리를 한번 보시죠. 

 

 

베르사유 조약 (1919628, 1111분 체결)

 

- 1차 세계대전의 공식적인 종전 협정

- 연합국과 독일 간에 체결,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음.

 

o 국제 연맹 (League of Nations) 설립

  국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기구인 국제 연맹이 설립

  독일은 초기 멤버에서 제외

 

o 독일의 영토 조정 및 재편성

  신국가 창설: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통합 금지, 체코슬로바키아, 폴란드 등 신국가가 설립

  독일 영토 축소:

  알자스-로렌, 프랑스에 반환,

  에인슬라를 벨기에에, 그리고 포젠과 실레지아의 일부를 폴란드에 할양

  독일의 식민지 할당: 독일의 식민지와 해외 자산은 연합국에 의해 분배

 

o 군사 제한

  군대 축소: 독일의 군대는 100,000명으로 제한되었으며, 공군과 잠수함은 금지

  군사력의 제한: 독일은 전쟁에 사용된 군사 장비의 생산을 금지

 

o 전쟁 책임 및 배상

  전쟁 책임 조항: 조약 제231조는 독일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명시.  전쟁의 죄 (war crime)’ 를 인정

  전쟁 배상금: 독일은 전후 피해국가에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으며, 금액은 후에 결정

  독일의 산업 자원 및 자산도 조정되어 연합국의 통제 아래에 놓임.

 

o 전쟁범죄를 경고하고 평화 상지화: 조약일시 및 장소의 결정: 19196281111, 베르사유 궁전

  , 왜 이 시간인가?

   독일이 패전을 인정하고,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발표한 일자: 1918111111시 였음.

   연합국측은 종전의 상징은 평화의 상징이기에, 11시 11분의 좋은 상징을 체결일시로 정함. 

 

 . 왜 이날자와 이 장소인가?

    그 시점에서 과거에, 독일은 프랑스와의 전쟁 (프랑크-프로이센 전쟁)에서 승리를 기념하며 독일 제국을 발표, 그 일시가  1871 6 28일, 베르사유 궁전이었음.

 

 

결론:

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의 전후 재편성과 국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, 조약의 내용은 나중에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. 독일인에게 역사적 굴욕을 안기었고, 독일 내부의 불만과 경제적 어려움은 나치당의 부상으로 이어짐. 이는 결국 또 다른 전쟁.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하는 요소가 되었음.


사회심리학적 현상으로 볼때, 전쟁마저도 상징화를 통해 승자의 성취를 널리 알리고, 또 상장화의 재상징화를 통해 언젠가 또 다른 복수를 시도하며, 이것을 사회적으로 공감하고 용인하는 현상을 볼 수 있음.  

 

 

 

참고 사이트:

Chat GPT

https://namu.wiki/w/%EB%B2%A0%EB%A5%B4%EC%82%AC%EC%9C%A0%20%EC%A1%B0%EC%95%BD
https://namu.wiki/w/%ED%94%84%EB%A1%9C%EC%9D%B4%EC%84%BC-%ED%94%84%EB%9E%91%EC%8A%A4%20%EC%A0%84%EC%9F%8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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